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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이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공식경기. 그러나 3회부터 박노준으로 교체된다. 대학시절 3회는 선동열에게 마의 이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국 선동열의 마지막 대학 공식경기는 2이닝 던지고 마감되었다. 이 때가 해태 유니폼을 입기 불과 반년전이었다. 1학년 투수 김기범이 한 대회 5완투승을 거두어 선동열의 1년치 승수를 쌓는 모습도 확인 할 수 있다.
- 확인된 선동열의 대학시절 부진한 투구들 -
81 춘계리그 한양대전 - 2회에 난타, 2실점 허용 후 강판
81 추계리그 연세대전 - 구원등판해서 이순철에게 3루타 포함 4피안타 3실점
81 야구대제전 前 부산상고전 - 9회 결승홈런 맞고 패전
82 춘계리그 동아대전 - 박동수와 맞대결해서 패전
82 백호기 성균관대전 - 5회 신입생 장채근에게 2점 홈런 맞고 강판
83 춘계리그 동국대전 - 3회 만루에서 이건열에게 밀어내기 볼넷 포함 5피안타 4자책 허용 후 강판
83 추계리그 건국대전 - 사사구를 남발하면서 패전
84 춘계리그 동아대전 - 0.2이닝 3피안타 2실점 패전
84 춘계리그 한양대전 - 1회 1실점 강판
84 춘계리그 연세대전 - 4회 7피안타 2실점 강판
84 가을철 대학야구 연맹전 영남대전 - 3회 박노준으로 교체
2. 선동열이 82년 대학리그에서 12승을 거두었다?
선동열은 대학 4년간 82년 대통령배 최우수상을 수상 이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평범한 대학리그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선동열 팬들은 82년에 선동열이 무려 12승을 거두었다는 주장을 했다. 선동열 관련 기사에 82년에 12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자세하게 조사해보았다.
1982년 춘계리그 준결승 동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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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동아대의 2년생 박동수는 이날 아우트 코너로 흐르는 교묘한 변화구로 고려대 30타자를 맞아 안타는 단 4개만 허용했고 삼진만 6개를 잡아내 완봉승 투수가 되었다. 이로서 올 첫 대회인 대통령기대회 우승을 포함해 올해 연속 8승을 올렸던 고려대는 9번째 경기에서 1패를 했고 투수성적 4연승을 자랑했던 강속구의 고려대 에이스 선동렬도 1패를 기록하게 되었다.
출처 : 82년 4월 24일 동아일보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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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 선동열은 2번째 대회인 춘계리그를 치른 시점까지 4연승을 하다가 1패를 당한다. 이 때까지 선동열의 전적은 4승 1패였다는 것이다. 첫 대회인 대통령배에서 선동열은 2완투 1구원승으로 3승을 거두었고, 두번째 대회인 춘계리그에서 고려대가 올린 4승의 승리투수는 다음과 같다.
- 82년 춘계리그 고려대 승리투수 -
4월 12일 고려대 동국대전 2대 0 (양상문 완투승)
4월 14일 고려대 인천체전 10대 2 (강상진 진동한 계투, 진동한 승)
4월 16일 고려대 원광대전 6대 1 (진동한 선동열 계투, 진동한 승)
4월 20일 고려대 성균관대전 6대 0 (선동열 완투)
전반기 리그 선동열의 성적은 4승 1패 (3완투승)인 것이다. 그럼 이후에 벌어진 대회에서의 성적도 살펴보자.
- 82년 부산시장기 고려대 승리투수 -
5월 25일 고려대 건국대전 3대 2 (진동한 선발, 선동열 2회 등판 구원승)
5월 29일 고려대 성균관대전 7대 4 (고려대 투수 확인 안됨)
5월 30일 준결승 고려대 한양대전 6대 4 (양상문 강상진 계투, 강상진 구원승)
6월 1일 고려대 인하대전 8대 3 (강상진 양상문 계투, 강상진 승)
강상진은 2승으로 우수투수상 수상하고 선동열은 미확인 경기 제외하면 1구원승을 챙긴다.
- 82년 추계리그 고려대 승리투수 -
10월 2일 고려대 중앙대전 4대 2 (선동열 8회 등판 구원승)
10월 5일 고려대 인천체전 14대 2 (이효봉 완투승)
10월 7일 고려대 부산산업대전 7대 3 (양상문 구원승, 선동렬 6대 3으로 앞선 7회 구원 마무리)
10월 9일 고려대 원광대전 4대 0 (선동열 완투)
이후 고려대는 추계리그와 대학 선수권에서 2패를 당해 총 전적 16승 3패를 기록하게 된다. 이 16승 3패 중 고려대의 승리투수가 확인되지 않은 경기는 10번째 승리인 부산시장기 성균관대전이 유일하다.
결국 선동열은 확인되지 않은 한 경기 제외하고 18경기에서 10경기 나와 7승 1패 4완투를 기록한게 전부다. 이 성적은 물론 좋은 성적이지만 역대 국가대표 에이스들에 비해 독보적인 성적이 절대 아니다.
선동열의 대학시절 한 대회 최다승은 82년 대통령배 3승이 최고인데, 이 또한 한 대회 4,5승을 밥먹듯이 올렸던 최동원 등의 투수들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리고 위의 승리기록을 자세히 살펴보면 승이 드문드문 있어서 어지간한 에이스라면 저정도 등판간격으로 저런 성적을 거두는게 어렵지 않았다. 완투승도 고작 4승이고, 이 중 강팀을 상대한 것은 인하대와 한양대, 2경기 뿐이었다.
아무튼 선동열의 82년 대학리그 승수는 확인된 7승 이외에 미확인된 1경기에서 선동열이 승리를 거두었다고 가정해도 고작 8승이다. 또한 그 경기는 시간 제한이 걸려 이틀간 벌어졌으므로 고려대 측 투수는 여러명의 투수가 나왔을 것으로 추측되며, 완투가 아닌 2승을 거둔 강상진이 이 대회 우수투수상을 받은 것을 감안했을 때 선동열이 승리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국 82년 대학리그에서 선동열이 12승을 거두었다는 주장은 완전히 날조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지 않고 추가적인 근거를 찾기 위해 다른 대회를 알아봤다. 우선 정규리그가 아닌 백호기. 그러나 이 대회에서 고려대는 1회전 탈락하여 이 대회 승수는 아니란걸 알아냈다. 이 대회 경기결과는 다음과 같다.
1982년 백호기 성균관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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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고려대가 5회까지 2대 0으로 앞설때만 해도 최감독의 불안은 쓸데없는 걱정처럼 보였다. 그러나 5회말 성균관대 장채근이 고려대 선발투수 선동열의 첫볼을 강타하여 왼쪽 스탠드에 꽂히는 동점 2점 홈런을 날리고 6회말 이연수의 2루타에 이은 조차용의 후속타로 3대 2로 전세를 뒤엎으면서 (후략)
출처 : 82년 7월 14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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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살폈듯이 이 대회에서 선동열은 장채근에게 동점 홈런 맞고 팀의 역전패의 원인이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백호기에서 1승도 추가하지 못한 선동열이 어디서 12승을 채웠을까? 어거지로 국제 대회인 82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따낸 3승을 더해도 12승에는 모자란다.
그 답은 3월에 서태평양 대회라는 친선대회가 있었는데 선동열이 이 대회에서 호투했다는 기사가 있다.
정규 대학리그 7승 (MAX 1승) + 국제대회 3승 < 12승
결국 한미대학야구도 아닌 서태평양 대회라는 국제 친선경기에서의 승리까지 어거지로 끌고와야 겨우 12승이 맞춰진다는 사실이다. 선동열이 대학리그에서 12승을 거두었다는 주장을 어떤 기자가 했는지는 몰라도, 이러한 방식으로 승수를 세는 것은 말도 안된다.
3. 선동열이 대학리그에서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
선동열 팬들은 82년 대학리그 12승 주장에 그치지 않고, 선동열이 대학리그에서도 4년 통산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이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하게 증명 가능하다. 선동열이 두들겨 맞은 경기에서의 자책점만 확인해보자. 자책인지 비자책인지 정확하지 않은 경기는 선동열에게 유리하도록 제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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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년 춘계리그 한양대전 : 2회 3안타 2실점 강판 (1이닝 2자책)
81년 추계리그 연세대전 : 8회 1사 2루에서 등판 등판 아웃카운트 하나 잡고 4안타 3실점 후 강판 (1/3이닝 4자책점)
82년 춘계리그 동아대전 완투패 (8이닝 2자책)
83년 춘계리그 동국대전 : 3회 1사후 만루에서 밀어내기 1실점 후 강판 구원 박노준 주자일소 2루타 허용으로 2.1이닝 4자책
83년 추계리그 건국대전 : 차동철과 맞대결 4실점 완투패. 집중 5안타 허용하고 무너짐 (8이닝 4자책)
84년 춘계리그 동아대전 : 1회 2사후 3피안타 2실점 후 강판 (0.2이닝 2자책)
84년 춘계리그 연세대전 : 4회 7안타 2실점후 강판 (아웃카운트 안 나와있으나 선동열에게 유리하게 3.2이닝 2자책)
84년 춘계리그 한양대전도 1회 1실점후 강판하였으나 자책점 여부 알 수 없어 제외.
그 이외 호투한 경기에서의 실점 모두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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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확인된 경기만 해도 24이닝 20자책점이다. 이 20자책점을 0점대 방어율로 만회하려면 무려 156이닝 이상을 무자책으로 막아야 가능하다. 그러나 선동열이 가장 많은 승수를 올렸던 82년 조차 고작 7승이고, 그 7승 중 4승만 완투이고 나머지는 구원승이다. 결국 선동열에게 유리하게 82년 완투한 4경기를 모두 완봉이라고 가정해도 고작 50이닝 정도이다.
81년은 선동열이 2이닝을 넘기기도 어려운 시절이었고, 83년 대학리그는 최고 성적을 낸 투수 박노준의 승수가 고작 5승이다. 83년 선동열이 50이닝 이상을 무자책으로 막으려면 완봉승이 6경기는 나와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 해 최고 성적의 박노준이 5승에 1점대 중반의 방어율을 기록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84년은 춘계리그에서만 3경기 조기 강판을 당했던 선동열이 그 해 5승을 넘게 올렸을 가능성은 없다. 실제로 선동열은 춘계리그에서 1완투, 추계리그에서 2승 정도가 확인되었을 뿐이다.
결국 선동열의 대학 4년간 승수가 20승에 못 미치는건 확실하며, 아무리 선동열에게 유리하게 계산해보아도 방어율이 0점대일 가능성은 전혀 없다. 게다가 선동열이 승리한 경기에서도 83년 추계리그 연세대전 이순철의 그라운드 홈런 등으로 실점한 경기가 숱하게 있는데 0점대 방어율이 가능할 리가 없다.